역사를 통해 알아보는 방사능에 대한 오해와 진실
원자력 발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걱정은 무엇일까요. 바로 방사능입니다.
인류가 원전이라는 마치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에너지 기적을 창조했을 때 따라오는 그림자 같은 존재가 바로 방사능 입니다.
방사능과 방사선을 구분하는 건 다소 헷갈릴 수 있습니다. 방사능은 ‘물질이 방사선을 내는 능력’을 말하며, 방사선은 자연에서도 존재하는 입자선 혹은 전자기파를 말합니다.
보통 방사능을 내는 물질인 방사성 물질은 마리 퀴리 부인이 발견한 것으로 유명한 라듐과 폴로늄, 우라늄 등을 뜻합니다.
방사선은 라듐이나 폴로늄 같은 물질에서 발생하는 입자선을 말합니다. 원자력 발전이나 핵무기에서 우라늄 핵이 붕괴할 때 나오는 것도 방사선이죠.
방사능에 노출되면 인간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가장 큰 피해는 생명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DNA가 고장이 나게 되죠. 이 때문에 갑작스러운 유전적 질병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같은 방사능을 둘러싸고 잘못 알려진 사실들이 많습니다. 마치 방사성 물질에 닿기만 해도 죽음에 이르는 것처럼 묘사되거나, 반대로 별 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이죠.
과거에는 방사능을 어떻게 다뤘으며, 오늘날에도 이어져 오고 있는 ‘방사능 괴담’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방사성 물질의 발견과 ‘유령 시계공장’ 사건
방사성 물질인 라듐, 폴로늄, 우라늄 등이 처음 발견됐던 19세기에는 방사능에 대한 위험 인식이 거의 없다 시피 했습니다.
오히려 어떠한 자극 없는 자연 상태에서도 방사능이라는 ‘에너지’를 내뿜고 있는 방사성 물질을 두고 신비롭게 여기며 때로는 만병통치약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오늘날에도 자연 상태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제품들은 마치 건강에 효능이 있다고 여겨지곤 합니다. 대표적으로 게르마늄 팔찌, 음이온 장판 같은 제품이죠. 더 나아가 ‘라돈 침대’ 사건과 같이 전기 없이 음이온이 나오는 사실이 마케팅에 이용되곤 합니다. 자연 상태에서 음이온을 발생하는 건 방사성 물질 밖에 없습니다.
최초로 라듐과 폴로늄을 발견했던 마리 퀴리 부인도 방사능에 대한 위험성을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퀴리 부인은 연구하던 방사능 물질을 그대로 침실에 놓고 자기도 했으며, 지금처럼 보호복 없이 맨손으로 이 물질들을 다뤘습니다.
이 때문에 퀴리 부인은 건강이 악화됐고, 결국 방사선 피폭에 의한 재생 불량성 빈혈 등으로 투병 생활을 이어가다가 향년 66세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게다가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연구가 이뤄졌던 탓에 지금도 퀴리 부인의 연구노트는 방사능에 피폭된 상태입니다. 지금도 퀴리 부인의 연구노트를 보려면 방사능을 차단하는 보호복을 입어야 할 정도입니다.
20세기 들어서도 방사성 물질에 대한 위험성은 다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1920년대 벌어진 ‘유령 시계공장’ 사건 입니다. 라듐 소녀들이라고 알려진 이 사건은, 라듐을 이용해 시계의 숫자와 바늘에 야광 처리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방사능에 노출된 일입니다. 이들 중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후에 암 등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이후 시계에서 라듐이 쓰이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오늘날 시계의 야광 처리는 방사능이 나오지 않은 다른 물질로 쓰입니다. 그렇지만 라듐이 쓰였다는 흔적은 오늘날에도 발견되곤 합니다. 명품 시계 브랜드인 파네라이(Panerai)의 라디오미르(Radiomir) 모델이 바로 라듐이라는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게다가 1950년대에는 핵무기 실험을 구경하는 관광 상품이 있었을 정도였습니다. 미국의 핵실험은 주로 사막이 많은 네바다 주에서 이뤄졌는데, 핵실험할 때 발생하는 버섯구름을 라스베이거스에서도 볼 수 있었을 정도입니다.
핵실험을 하면 취재진부터, 실험을 하는 군인, 그리고 관광객들이 모였는데요. 결국 이들은 모두 방사능 피폭으로 이어졌습니다.
방사선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들’
하지만 방사선은 ‘죽음의 광선’이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피폭 당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죽거나 투병 생활을 했지만, 모두가 사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상상 속에서 나올법한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경우도 흔치는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1986년 구(舊) 소비에트 연방에 위치했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입니다. 물론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원전 사고이자 재앙이며, 지금도 그 피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방사선에 피폭 당했던 사람들이 모두 사망하거나 병을 앓지는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오히려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전 세계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위험을 막기도 했습니다. 바로 ‘체로노빌 다이버’로 알려진 사람들 입니다.
체르노빌 원전이 폭발 사고를 일으키면서 원전에 쓰였던 냉각수는 지하수로 흘러들어가기 직전에 처해있었습니다. 원전에 사용된 냉각수는 단순한 물이 아닙니다.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수가 만약 지하수로 침투한다면 전 유럽에 광범위한 오염이 일어날 수 있는 순간이었죠.
이를 막기위해 나섰던 세 명이 있었습니다. 원전에서 일했던 펌프 기사 알렉세이 아나넨코, 발레리 베스파로프, 보리스 바라노프 였습니다. 이들이 했던 행동은 무려 방사능으로 오염된 냉각수 속에 잠수해서 펌프를 가동시켜 냉각수가 지하수로 흘러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물론 이들이 어떠한 생각으로 그런 용기있는 행동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용기 덕분에 최악의 상황은 피해간 셈 입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냉각수에 들어갔으니 이들이 피폭된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들이 곧바로 사망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연장자였던 바라노프는 피폭과 관계없이 심장마비로 2005년에 65세 사망했고, 나머지 2명은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또한 체르노빌 원전이 위치한 프리피야트 숲에는 비단뱀 크기의 지렁이가 산다는 둥, 사람 얼굴만한 거미가 발견됐다는 둥 소문이 돌곤 하지만, 대부분이 괴담에 가깝습니다.
물론 지금도 프리피야트 일대에는 방사선에 대한 위험이 남아있기 때문에 방문하기 위해선 허가가 필요하며, 체류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물론 하루 투어로 피폭되는 양은 병원에서 찍는 흉부 엑스레이보다 훨씬 적습니다.
방사선, 우리 주위에도 있다?
우리 주변에는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방사선이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자주 먹는 바나나에도 방사성 동위원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나나 한 개에서 나오는 방사능 양은 0.1μSv(마이크로시버트)로 인체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양 입니다.
방사능 양의 비교가 잘 안된다면 비행기를 1시간 타면 약 5~10μSv의 방사선을 받습니다. 아무래도 우주와 가까워질수록 대기가 막아주던 방사선의 영향을 더 받게 되니까요.
또 생활 속 방사선량은 0.117mSv(밀리시버트) 수준이며, 일반인의 연간 피폭선량 한도는 1mSv 입니다. 원자력 발전소에 위치한 방사성폐기물 임시저장시설 부지에서 나오는 방사선량도 0mSv에 가깝습니다.
즉, 인간은 항상 방사선에 노출돼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물론 방사능 물질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면 피폭선량 한도를 훨씬 초과하게 되면서 건강상 큰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방사능은 곧 죽음이다’와 같은 방사능에 대한 오해는 오히려 방사성 물질에 대한 위험성을 제대로 인지하는데 역효과를 불러 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범수 세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