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선박의 시험무대 ‘울산’
수소는 친환경 에너지망의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생산량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재생에너지로부터 발생한 잉여 전력을 수소에너지의 형태로 보관하면 전력이 부족할 때 보관해 둔 에너지를 꺼내 쓸 수 있기 때문이죠. 또한 전기선을 직접 연결해 충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수소만 공급하면 연료전지를 이용해 전기로 움직이는 장비들을 가동할 수 있지요. 한편으로 수소연료전지는 값비싼 충전지를 대체해서 커다란 트레일러에도 장착할 수 있어서 대형 상용차도 전기화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쓰임새가 많은 수소에너지지만 해결할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비용입니다. 수소는 쉽게 구할 수 있는 원소지만 운반과 보관에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수소와 같은 기체를 효율적으로 운반하려면 한 번에 많이 운송할 수 있도록 압축하거나, 액체로 만들어서 운반해야 합니다. 그런데 수소는 워낙 가벼운 원소다 보니 액체로 만들려면 최소 90기압이 넘는 매우 높은 압력을 가하거나 온도를 영하 253도 이하로 낮춰야 합니다. 이처럼 고압, 저온 상태를 유지하는 지하 배관(파이프라인)이나 운반탱크를 만들고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가장 작은 원소인 수소의 강한 반응성도 문제입니다. 수소는 금속에 스며들어 금속을 약하게 하기도 하므로 수소를 운반, 저장하는 용기에는 고가의 합금을 사용해야 하며, 그 수명도 짧은 편입니다.
이러한 난점 때문에 수소에너지는 한동안 실용화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소자동차에 다양한 연구와 지원이 이뤄지고 상용화되면서 수소에너지 운영비용이 실용적인 수준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산업도, 인프라도 없어 연구실 수준에서나 가능하던 수소에너지였지만, 이제는 수소차 기업이 주식시장에서 주목받고 주요 국가에서 수소에너지 인프라 계획을 추진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재생에너지가 걸어온 길이기도 합니다. 10년 전만 해도 재생에너지 발전단가가 높아서 에너지전환에 회의적인 의견이 있었지만, 최근 기후위기가 중요 의제로 부상하고 각국이 재생에너지 확대를 강도 높게 추진하면서 시장이 커지는 것은 물론, 풍력과 태양광의 발전단가가 이제는 화력발전과 경쟁을 벌일 만큼 낮아지면서 재생에너지의 경쟁력도 높아졌습니다. 과감하게 투자한 초기의 시설들이 테스트베드*로서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에 기여한 것입니다.
*테스트베드(Test Bed) : 새로운 기술‧제품의 성능 및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 또는 시스템
울산의 수소그린 모빌리티 규제자유특구 계획. 울산시는 수소에너지를 주요 성장동력 중 하나로 삼고 있습니다. © 울산시
국내에서는 수소에너지 분야에서 울산이 바로 그러한 테스트베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울산시는 자동차는 물론 선박과 주요 산업시설까지 수소경제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울산은 국내 도시 중 지역 내 1인당 총생산액이 최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산업이 발달한 도시로, 특히 자동차, 중공업, 석유화학과 같은 전통적인 대규모 ‘굴뚝산업’이 많습니다. 울산시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이들 산업군을 친환경으로 전환하는 데 나섰습니다.
울산시의 수소경제 전환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울산은 현재 국내 수소에너지의 주요 생산기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가장 경제성있는 수소 생산 방법이 산업 공정에서 발생하는 ‘부생수소’인데, 울산의 석유화학 단지에서는 부생수소가 풍부하게 생산됩니다. 이러한 이점을 이용해 울산시는 생산지로부터 지하 배관(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소를 공급받는 수소 충전소를 국내 최초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수소충전소가 값비싼 트레일러를 통해 수소를 공급받는 것과 달리 지하 배관을 통한 수소 공급은 초기 인프라 구축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긴 하지만 일단 인프라를 구축하고 나면 효율적으로 수소를 공급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천연가스를 선박으로 수입할 때보다 가스관을 통해 수입할 때 운반비용이 더 저렴한 것처럼, 지하 배관 수소 충전소를 통해 장기적으로 수소 충전 비용을 낮출 수 있습니다.
울산시에 건설된 국내 최초의 파이프라인 수소충전소인 ‘투게더 수소충전소’. 울산의 석유화학공업단지에서 생산된 부생수소를 파이프를 통해 직접 공급받아서 저렴하게 제공할 수 있습니다. © 울산시
수소 생산공장에서 바로 공급받는 수소 배관은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개발하는 데도 유용하게 활용됩니다. 울산 남구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단에서는 석유화학산업에서 생성된 수소를 활용해서 수소연료전지 기술을 실증하는 시설이 마련됐습니다. 이 시설에서 두산퓨얼셀은 이미 상용화된 인산형 연료전지(PAFC) 1기(0.44㎿)를, 현대차는 넥쏘에 사용하는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PEMFC) 방식 4기를 발전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습니다.
수소에너지에 기반한 ‘청정 울산’의 비전은 이러한 시설들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울산에서는 시와 기업이 힙을 합쳐 ‘수소 타운’을 조성하고 있는데요, 이미 울산 시민들은 2013~2018년 동안 수소 시범 타운 운영을 통해 수소에너지의 안정성과 효용성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2020년부터는 사물인터넷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 배관망을 시내에 설치해 수소에너지를 이용한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주거와 화훼 단지의 에너지원으로 수소를 사용할 계획입니다.
울산 장생포 앞바다에서 시운전중인 에이치엘비의 블루버드. 블루버드는 길이 12m의
레저용 소형선으로, 2021년 6월부터 울산에서 시험운행중입니다. © 에이치엘비
지난 2021년 6월에는 국내 기업인 에이치엘비가 제작한 국내 최초의 레저용 수소선박인 ‘블루버드’가 울산 장생포 앞바다에서 성공적으로 운행되었습니다. 선박은 넓은 바다에서 커다란 선체를 움직여야 하기에 화석연료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통념을 깬 사건이었습니다.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블루버드는 매캐한 연기나 통통거리는 소음 없이 바다를 미끄러지듯 움직여서 청정에너지의 장점을 한껏 보여줬습니다. 블루버드는 40분 동안 수소를 충전하면 6시간 동안 6~10노트의 속도로 운항할 수 있고 보조배터리를 추가하면 최대 8시간 항해가 가능해서 연안 레저용으로 손색이 없는 실용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최대 8명이 승선하는 블루버드는 배수량 6톤, 길이 12m인 소형선이지만 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에이치엘비는 올해부터 3~5년 동안 40인승 수소연료전지 여객선을 개발해 시판할 예정입니다.
2021년 10월 28일, 울산 남구 장생포항 앞바다에서는 송철호 울산시장이 탑승한 가운데 수소선박 시운전이 진행됐습니다. 빈센이 제작한 하이드로제니아는 40분 충전해서 6시간 동안 10노트로 운항할 수 있습니다. © 우성만 기자/울산매일
수소선박에 도전하는 국내 기업은 또 있습니다. ‘하이드로제니아’를 개발한 빈센입니다. 하이드로제니아는 블루버드보다 약간 작은 6인승 레저 선박으로, 그 외 사양은 블루버드와 비슷합니다. 빈센은 올해부터 길이 13m, 16m급 선박을 개발해 수소연료전지 소형선을 본격적으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블루버드와 하이드로제니아 모두 현재로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동급 선박에 비해 5~10배 정도 가격이 비싸지만 향후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면 경제성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무엇보다 울산시의 수소에너지 정책이 든든하게 뒷받침하고 있어 사업성은 밝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현대가 넥쏘를 발표할 당시만 해도 자동차 시장에서는 수소차의 전망에 의문을 품는 의견이 많았지만 각국에서 수소차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금은 필수 기술을 선점할 수 있었던 선견지명으로 평가받는 것처럼 말이지요. 울산을 시작으로 수소에너지의 테스트베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국내에서 계획중인 수소연료전지 컨테이너선의 상상도. 수소에너지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면서
해운의 전기화를 이끌 전망입니다. 수소에너지 테스트베드 울산시의 노력은 세계적인
무역국가인 한국이 미래의 해운 환경에서 앞서나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한국선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