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의 시작 SMP(계통한계가격)]
[전기요금, 우리는 어떻게 결정된 가격을 내고 있을까?]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전기요금이 있습니다. 일반 가정에는 '일반용', 제조업 공장 등에는 '산업용' 학교 등 교육시설에는 '교육용' 전기요금 등이 그 용도별로 부과되고 있습니다. 시설의 용량이나 전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이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정한 전기요금 체계에 맞춰 요금을 냅니다.
그렇다면 이 전기요금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요? 원자력에서부터 석탄화력, LNG 가스 발전,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바이오매스 등 전기는 만드는 재료가 다양한 만큼 원가도 제각각입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사용하는 용도에 따라 정해진 요금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에너지에 관심이 있다면 한 번쯤은 "발전 단가가 저렴하다고 하는 원자력 발전소 전기만 골라서 쓸 수 없을까?"라는 상상을 해보셨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환경을 생각하니 신재생 전기만 쓰고 싶은데"라는 요구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국내 전력계통 구조에서 특정 발전원의 전기만 골라서 쓰는 것은 어렵습니다.
작은 개울물들이 큰 강으로 모이듯 우리나라 곳곳의 발전소들이 생산하는 전기는 국토 전역에 퍼져있는 송전망으로 모두 들어와 합쳐지게 됩니다. 발전원이 달라도 최종 상품은 '전기'로서 동일합니다. 한전은 송전망과 배전망 관리를 통해 이들 전기가 각 사용처에 안전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하고 요금을 받습니다.
시장적 시각으로 보면 소매사업자인 한전이 생산자인 발전사들로부터 여러 재료로 만들어진 전기를 구매한 후 하나의 상품으로 팔면서, 소비자들은 용도별로 같은 가격의 전기를 이용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다양한 연료원으로 나온 전기를 사들이는 한전은 발전사들마다 다른 가격을 지불할까요? 답은 '그렇지 않다' 입니다.
[전기요금의 숨은 설계자, SMP란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전력시장에는 한전 이외에 전력수급예측과 계통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전력거래소(전력거래소)라는 또 다른 플레이어가 있습니다. 전력거래소는 발전사와 한전과 같이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자는 아니며, 그보다는 국가 전력수급과 계통의 안전을 관리 및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력거래소는 우리나라에서 하루 동안 사용될 필요 전력량을 예측하고, 그만큼의 발전소들이 시장에 참여하도록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매일 필요한 전력량만큼의 발전소들이 발전단가가 낮은 순부터 차례대로 시장에 들어오고, 필요 전력량을 모두 채우는 시점에 전기 가격이 정해지게 됩니다. 사용량을 예측하고 그 예측치 만큼의 발전소들이 시장에 참여하면서 결정되는 가격을 '계통한계가격(SMP ; System Marginal Price)'이라고 합니다. 한전이 발전소들의 생산전력을 사들이는 가격으로 전력도매가격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2023년 1월 이후 가중평균 SMP(출처 전력통계정보시스템)
[하루 전력 사용량이 요금에 미치는 영향]
예를 들어 2025년 4월의 경우 평균 최대전력은 65GW 수준이었습니다. 이에 안정적인 전력공급을 위해 전력거래소는 약 3~5GW 정도 여유를 두고 68GW 정도의 수요를 예측합니다. 발전소들은 원가가 저렴한 원전과 신재생 에너지부터, 석탄화력, LNG 등의 순서로 시장에 참여하고. 마지막 68GW 선을 채우는 발전소가 가격을 정하게 됩니다.
68GW를 채우며 마지막에 시장에 들어온 발전소 전력생산단가가 kWh당 110원이라고 하면, 그에 앞서 시장에 참여한 원전, 신재생, 석탄 발전소들 모두 kWh당 110원으로 정산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한전이 여러 발전소의 전력을 사들이기는 하지만 정작 지불하는 금액은 동일합니다.
[왜 발전단가가 다른데 가격은 똑같을까?]
이와 같은 가격결정 방식은 전력수요에 따른 가격변동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전력수급이 안정적일 때면 비교적 저렴한 발전소 가동으로도 계통을 유지하는 만큼 낮은 시장가격이 유지되지만, 반대로 수요가 급격히 상승할 때는 발전원가가 높은 발전소까지 가동해야만 해 전체 시장가격 상승을 가져옵니다.
우리나라가 다양한 발전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SMP라는 단일가격 체계를 유지하는 이유는 에너지 수급 안정과 원가절감을 유도하기 위함입니다. 단순하게 발전원가가 낮은 신재생에너지와 원전으로만 채우면 시장가격은 낮출 수 있지만, 안정적인 전력수급은 불가능합니다.
날씨에 영향을 받는 신재생은 사람의 의지대로 전력생산량을 조절할 수 없고, 원전은 기동과 정지에 시간이 오래 걸려 그때그때 필요한 전력에 빠르게 대응할 수 없습니다. 가격은 비싸지만, 바로 가동하고 정지할 수 있는 LNG 발전소를 전력계통에 채워 넣는 이유입니다.
가장 높은 가격의 발전소에 맞춰 비용을 정산하는 것은 발전소들의 원가절감 경쟁을 위한 것입니다. 저렴한 발전소는 저렴한 대로 비싼 발전소는 비싼 대로 가격을 정산하게 된다면 그 어떤 발전소도 원가를 낮추려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발전 산업 자체가 사업자들에게 기피 업종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SMP가 저렴한 발전소에도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가격 구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더 많은 발전소들이 원가절감에 노력하는 유인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한국전력거래소의 일일 전력수급 현황판
전력시장에서 SMP는 시장수요에 맞춘 가격결정과 함께 국가 전체의 전력산업 유지를 위한 당근과 채찍 역할을 동시에 하는 존재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