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인플레... 에너지효율화가 해답이다
머니투데이 민동훈 기자
무더위가 예년보다 빨리 찾아오면서 지난 7월에 일찌감치 전력수요 역대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특히 8월 7일 오후5시 기준 최대전력수요가 9299만kW(킬로와트)까지 치솟아 기존의 최대 기록인 2018년 7월 24일 오후 5시의 9247만KW도 넘어섰다. 이미 퇴역한 석탄화력 발전기를 다시 돌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위기상황이었다. 다행히 8월 들어 전국적으로 강한 비가 이어지면서 전력수급은 안정화를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역대 최악의 정전사례로 꼽히는 2011년 '9.15 순환정전' 사태는 9월 추석을 앞두고 벌어졌다. 지금처럼 에너지를 펑펑 쓰다간 언제 '블랙아웃'이 닥칠지 모를 위기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자료제공 : 전력거래소
최근 우리나라의 에너지 위기는 산업이 고도화되고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에너지 사용량이 매년 폭증하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COVID-19)로 얼어붙었던 세계 경제의 회복세 덕에 에너지 수요가 폭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유럽발 LNG(액화천연가스) 수급 위기가 겹치면서 에너지 가격까지 치솟자 우리 뿐 아니라 세계 각국도 에너지 안보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볼 때 탄소중립으로 가는 여정에 징검다리 역할을 해야 할 LNG가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이다.
탄소중립이라는 전 지구적인 목표 앞에 석탄과 같은 화석에너지는 퇴출이 불가피하다. 이 자리를 대신 채워야 할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기상 조건에 따른 발전량이 좌우되는 '간헐성' 문제로 기저전원 역할을 하기엔 불충분하다. 결국 원자력 발전이 탄소중립 시대 핵심 에너지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원전이 기저전원으로써 탄탄히 받쳐주고 신재생에너지가 에너지공급을 뒷받침하는 구조가 이상적이다. 그러나 원전의 경우도 주민수용성, 폐기물 처리 등 난제로 인해 마음껏 지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세계 14위인 우리나라의 1차 에너지 소비량은 세계 9위 수준이다. 1차 에너지란 석유, 원자력, 태양열 등 천연자원 상태에서 공급하는 에너지를 뜻한다. 연간 석유소비 7위, 전력소비 7위에 달한다. 그동안 한국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1차 에너지 소비량도 급격히 늘어왔다. 다시 말하면 에너지소비량 증가는 경제성장의 증거이기도 하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보다 1.7배 이상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고 에너지 원단위(효율)는 OECD 36개국 중 33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에너지 원단위는 1차 에너지 공급량을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값으로, 원단위가 낮을수록 적은 에너지로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한다는 뜻이다.
자료제공 : World Energy Balance 2020(IEA),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20(BP)
우리도 언제까지나 에너지 다소비국가 체제로 남을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입 의존도는 90%를 넘어선 상태다. 2019년 기준 에너지 수입액은 1267억 달러(잠정치)로 국가 전체 수입액의 25.2%를 차지하고 있다. 총 에너지 수입액의 55.4%를 차지하는 원유 수입의 경우 중동지역이 70.2%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에너지안보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다.
진부하지만 결국 해법은 '에너지 수요 효율화'다. 에너지 수요 효율화는 고유가 등 에너지 위기와 탄소중립 대응에 있어 입지, 계통, 수용성 등 공급 부문 3개의 허들을 원천적으로 회피하면서도 사회·경제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매우 강력한 방법이다. 수백조 원의 예산이 드는 첨단 설비나 기술을 개발하지 않고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으며, 수요 효율화를 위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신산업군의 육성은 물론, 산업의 경쟁력 자체를 끌어 올릴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윤석열 정부는 최근 발표한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통해 에너지 정책의 중심을 '공급' 에서 '수요 효율화'로 바꾸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27년까지 국가 에너지 효율을 25% 개선해 서울시가 6년 동안 쓰는 전력량에 버금가는 에너지 수요 효율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에너지 수요 효율화는 에너지믹스의 안정과 에너지 안보의 확보는 물론 최고의 기후·에너지 위기 극복 모델이 될 것이다.